친구야 미안하다. (1366교육중)
추석연휴이후 이주민 여성 상담원 선생님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각각 나라의 문화적인 차이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명절을 지나온 그들은 참으로 할말이
많은가 보다. 베트남은 여자들이 지위가 높다고 한다. 여성들이
전쟁에 기여를 했기 때문에 그러한 여성의 위치를 존중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명절때 그들은 하루종일 밥만하고
한국인 가족들만 모여 이야기하여 너무 외롭다고 푸념했다.
올리버스톤 감독의 풀 메탈 자켓에서 미군을 공포로 몰아가며
저격하던 저격수가 가녀린 어린여자였음이 머리에 스쳐갔다.
태국은 남자와 여자가 맞벌이 하며 가사노동이 여성을 얽매이지
않도록 외식문화가 잘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
여자를 무시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으나 하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명절은 지내고
나면 말할 기회가 없어서 더욱 한국말을 버벅거린단다. 이들의
추석후 증후군은 친정나라에 대한 강한 그리움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는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을 한다고
한다. 산후 유급휴가를 여유있게 줌으로 여성을 존중한단다.
물론 유아교육기관을 통해 일하는 여성을 보호하는것은
기본이란다. 한국은 어떻한가? 군필은 취업시험에 가산점을
주며, 국가에 기여한 것을 인정해주면서도 출산과 육아를 겪은
여성은 국가적인 짐으로 여겨 아주쉽게 ‘ 애났으면 집에서
애나 길르지 왜 (남자) 실업자 하나 더 만드냐는 눈치다. 든든한
친정이 없다면 그 이후에 ‘미친녀 널띠는’ 슈퍼 마녀가
아니면 무능과 게으름의 이름표를 달고 단순 가사노동에
묶여버리게 되는 것이 아직도 현실이다. 몽고댁이 입을 열었다.
‘몽고는 여자가 결정을 하고 여자가 힘이 있어요’. ‘요리는
누가 하면 어때요. 잘하는 사람이 하는거죠.’ 징기스칸의
딸들은 그녀들의 남자가 책임감이 없어도 별로 흔들리지 않고
집을 꾸려 나간단다. 그리고 재사는 사십구제까지만 예의
갖추어 성대히 지내고 죽은자들이 남겨진자들에게 짐이되지
않는단다.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에는 꼭 후렴이 한결같이 말
하나가 나붙었다. ‘그런데 한국은 더 잘살면서 왜 여자들의
지위가 이렇게 낮나요?’
이럴 땐 참으로 난감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유리지붕이 있어 여성이 지도자가
되기 어려운것도 사실이고 취업이 여성들에게 그리 녹녹한것이
아닌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여성의 지위가 낮은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가정은 조금 다르지 않는가. 일당을 송두리째
내놓고 골아떨어져 있던 고단한 아버지도 생각났고 집을 사고
파는 것을 결정했던 어머니도 머리에 스쳤다. 못입고
못먹으면서도 딸자식교육은 꼭 시키려 했던 목소리 큰 힘센
어머니, 직장을 잃자 서둘러 세상을 떠났던 아버지의 삶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 나는 퉁명스러운 남편이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나오지 않았는가? 한국의 아내들은 싸워오고있고 때론
얼르고 눈물 흘리며 더 좋은 사회가 있다고 믿어 왔다. 여전히
바쁘거나 시간이 나면 아프지만. 여성들과 남성들의 역할은
변화하고 있고 적어도 변하는 것이 시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임을 눈치는 채고있다.
그런데 많은 이주민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더욱 심한 것 같다.
그들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외국인이라는 또다른 차별의
가중치를 추석내내 겪어온것이다.
‘친구야 미안하다. 헛된 고통은 없다던데. 우리가 바쁘다고
친구를 못 돌아본것 같다. 같이 싸우자. 죽자 살자 사랑했던
남편들의 우둔한 차별에 일침을 놓으며 말이다. 친구야,
친정나라의 그 멋진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줘. 널 만난 내가
시원한 바람을 느끼듯 언제인가 다른 사람들도 너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볼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