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한국사회, 이주여성에 얽힌 몇 가지 생각  

                                                                                                                            허오영숙 / 조직팀장

내가 일하는 이주여성인권센터(이하 센터)에는 무턱대고 자기 나라 언어로 전화하는 이주여성들이 가끔 있습니다. 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주여성인권’센터니까 한국어가 아니더라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전화하는 경우라고 짐작을 합니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아무리 ‘이주여성’ 인권센터라고 하지만 아시아의 언어가 몇 개인데 그걸 다 구사할 수가 있겠어요?

다행스러운 것은 센터에서 여성가족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이주여성 긴급전화 1366’에는 베트남, 몽골, 러시아, 중국, 필리핀, 태국 등 6개국의 이주여성 상담원들이 있어서 연결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기나라 말로 전화를 걸어오는 이주여성들에게 이주여성 1366의 상담 고유번호인 1577-1366으로 전화를 하라고 ‘한국말’로 합니다. 아직 한국어를 모르는 이주여성들의 경우 전달이 안 될 수밖에요.

그래서 여러 언어로 ‘안녕하세요. 1577 – 1366으로 전화하세요. 거기에 러시아(각기 다른 나라) 상담원이 있어요.’ 라는 문구의 각 나라 언어를 한글로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어 책상 앞에 붙여놨습니다. 영어를 하는 필리핀 여성의 전화이면 “굿모닝, 유 캔 콜 디스 넘버 원 파이브 세븐 세븐 원 쓰리 식스 식스. 데어 이즈 필리피나 카운셀러”라는 식이지요. 베트남이면 “신짜오, 반 하이 꼬이 쏘 못 남 바이 바이 못 바 사우 사우. 어또 꼬 응어이 베트남”이고요. 물론 이렇게 말하기 전에 무턱대고 자기 언어로 말하는 여성들의 말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판단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요.

몇 번 이런 일을 겪고 나서 그래도 이주여성운동을 한답시고 다니면서 아시아 나라의 인사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지만 생각하는 것과 실제 언어를 말로 익히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는데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그런지 늘 붙여 놓고 봐도 외워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사무실에는 베트남 국적의 실무자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도 베트남어는 벽에 붙은 것을 보고 읽지 않고 자연스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도록 꽤 여러 번 연습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사말인 “신짜오”를 넘어가지도 못하고 그 친구에게 지적을 받습니다. 그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신과 짜오는 살짝 사이를 두고 발음해야 하며 짜오는 마치 한 음절인 것처럼 빠르게 연결하여 발음하여야 하지요. 그리고 짜오의 오는 정확하게 오 발음이라기보다 오와 우의 중간 정도의 발음인 듯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주도 사람들만 발음 할 줄 안다는 아래아 발음하고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거기에다 음정의 고저도 있지요. 신에서 짜오로 넘어갈 때 전체적으로 발음이 낮아지는 느낌이어야 한다네요. 그래서 그 친구는 나에게 신짜오를 하면서 동시에 머리를 어깨 쪽으로 내리는 행동을 같이 시키곤 합니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한국말에 익숙한 나에게 이것은 쉽지 않은 듯합니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도 그 친구에게 내 발음은 그저 ‘소리 나는 대로 읽는’ 것 같이 느껴지나 봅니다.

우리에게 외국어는 주로 영어를 뜻하고 제2외국어, 아시아의 언어라고 해도 주로 부강한 나라의 언어인 일본어, 중국어이기 때문에 아시아의 다른 나라 언어를 인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아시아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를 해바라기 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과 맞닿아 있겠지요.

이주여성 인권이란 말이 단체이름의 초입에 붙어있는지라 이주여성과 관련한 이러저러한 요청이 많이 옵니다. 그 중 하나가 석, 박사 과정에서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주여성 대상의 설문조사를 의뢰하는 경웁니다.

작년 연말쯤에 단체 대표 이메일로 비슷한 요청을 하나 받았지요. 이주여성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주여성 대상의 설문조사를 원하니 도와주면 좋겠다면서 설문지 모형을 덧붙여 보냈더군요. 이런 경우 기본적으로 우리 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해야 이주여성 대상의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삶을 보지 않고 조사만 피상적으로 할 경우에 가질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제입니다.

그 이메일에는 이주여성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이 문제를 연구하고 싶은지를 절절하게 쓰여 있더군요. 그런데 첨부한 설문지 모형은 순수하게 한글만 가득 있더군요. 어떠한 설명도 없이요. 그것은 이주여성들이 그 글을 전부 이해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는 것이었지요. 적어도 그 정도 설문지를 이해하고 답을 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은 한국어를 공부해야 가능한 내용이었지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영어를 중, 고등학교에서 6년을 의무적으로 배웠지만 영어로 된 설문조사를 이해하고 답할 수 있나요?

나는 거절의 메일을 보냈지요. 연구대상이 한국어를 잘 구사할 줄 아는 이주여성에 한정해서 할 조사였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했겠지만, 대상에 대한 한정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설문을 할 생각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요. 통역을 지원할 것인지, 각 나라 언어로 설문지를 별도로 만들 것인지 아무런 얘기가 없다는 것은 당신의 절절한 메일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주여성의 삶에 대한 초보적인 고민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고요.  

이렇듯 우리는 아시아의 다른 언어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으면서도 이주여성들에게는 한국어를 당연히 잘 해야 한다는 의식을 알게 모르게 갖곤 합니다.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정착해야 하니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말이긴 합니다만, 그녀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이며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이라는 이해와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더구나 그녀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어를 ‘듣도 보도 못했던’ 경우가 태반입니다. 전혀 생소한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한국어를 배우는 많은 외국 사람들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가 쉽지 않은 언어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숭례문에 불이 나고 나서 어떤 지인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사무실이 그 근처라 매일 숭례문 옆을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숭례문을 본 적이 없었다고요. 그런데 불이 나고 나서야 숭례문이 보이더랍니다. 인식하지 못했었단 말이지요.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를 그렇게 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에 살러 왔으니 한국어를 배우라고 격려하면서 동시에 그 여성들의 모국어를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언어에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이주여성들과 훨씬 가깝게 만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문화’니 ‘다문화 가족’이니 하는 말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적응해야 한다고 하는 우리 안의 장막을 조금씩 걷어내는 작업이기도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