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주여성,
우리가 더불어 살아야 할 자매입니다.
한국염
한 10년 전 독일 교회가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고 독일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입니다. 장학처에서 만든 독일어 어학코스에 피부색과 인종이 다른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었지요. 12월 31일 밤에 우리는 독일 제야의 밤 풍속을 구경하느라 마당에 나왔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12시가 되자 환희의 송가와 폭죽이 울려 퍼지고 온통 축제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때,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탄자니아 남학생이 나를 껴안고 한쪽 볼에 뽀뽀를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지요. 하나는 순간적인 섬뜩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안에 있는 인종차별의식을 발견한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흑인이 안았다는 데서 거부감이 생긴 거지요. 그때까지 나는 내 자신을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으로 알았었습니다. 내 속마음이 벗겨지는 순간이었고, 그때의 부끄러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이 나를 회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외국인이주여성들의 삶을 접하면서 여전히 내 안에 깊이 박혀있는 인종차별의식을 발견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인종사회로 접어들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지금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가난 때문에, 또는 새로운 삶의 탈출구로서 국경을 넘어 우리 사회에 들어와 살고 있는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도 여성들은 우리하고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삼중고를 당하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비단 이주여성들만을 위한 일은 아니지요. 굳이 인권운동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일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올바른 공동체로 들어가는, 폐쇄적인 우리 사회를 구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주여성들과의 만남은 나를 인간답게 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일에 동참하고 있는 여성들을 보면서 많은 격려와 자극을 받습니다.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이주민으로 살았던 경험을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의 모성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성보호팀, 가정폭력, 성폭력으로 상처받은 이주여성들을 보듬어 안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상담팀, 문화와 언어가 다른 국제결혼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을 법률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원하는 국제결혼가정팀, 이주여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제도개선을 위해 애쓰는 정책팀, 그리고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후원해주고 있는 후원가들, 이런 사람들의 다양한 돌봄과 관심, 참여로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눈꽃 사이에 보이는 상록수를 통해 사계절의 신비를 맛봅니다. 지난여름 도심지 빌딩 사이, 고수부지, 아파트 주변 곳곳에 만발해 있는 꽃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구나!” 감탄을 하던 때를 생각합니다. 꽃들 하나하나도 아름답지만, 여러 가지 꽃들이 어울려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어울림이 자연의 질서라면, 우리 인간사도 그렇지 않을까요? 여러 인종, 피부색이 더불어 어울려 사는, 국경을 넘어, 인종을 넘어 더불어 사는 세상의 모습을 나누고자 “이주여성의 삶 이야기”를 펴냅니다. 이 화보집을 통해 내 안의 인종주의를 깨고 한 가지 단조로운 색이 아니라 7가지 무지개 색으로 넓혀 가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운동이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