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사태와 이주민에 대한 시각
한국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조승희’라는 한국 학생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한국 사회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국가 이미지 훼손과 한·미관계에 대한 걱정, 그 후유증으로 미국에 사는 교포들이 보복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그래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사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또는 조문 사절단을 보내자는 논의까지 전개되다 미국 측에서 “미국은 다문화 국가이고 조승희는 미국인이므로 미국의 문제이지 한국에서 그렇게 반응할 일이 아니다”고 일축해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다른 한 가지는 한국에 사는 다문화 가족이나 이주노동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반응이다. 지난 며칠 언론사 몇곳으로부터 “우리 사회도 이주민 문제에 신경을 안 쓰면 버지니아 공대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지 않느냐”하는 질문을 받았다.
조승희가 미국 이민자로 미국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잠재되어 있다가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보도를 보고 우리 언론에서 그런 반응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이주단체의 대표인 만큼 “우리 사회가 버지니아 공대 사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불만을 갖지 않도록 이들의 인권과 복지에 신경써야 한다”는 답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질문은 받아들일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이 질문의 배경에 “이주민이 불만을 품으면 언젠가 우리 사회를 향해 조승희식의 불만을 쏟아낼 수 있다”는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불안이 깔려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들이 이말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할 지 고려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조승희가 일으킨 사태는 조승희라는 한 개인의 고립되고 비뚤어진 자아가 ‘콜럼바인 총기난사, 카진스키의 유나보머 테러, 한국 영화 올드보이, FPS 게임’ 등 폭력문화와 만나 일으킨 병리적 모방범죄일 뿐이다. 여기에 민족성이나 나라를 갖다붙일 이유가 없다. 그것 자체가 인종차별적 편견이다.
2005년의 프랑스 사태나 2006년 초 호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도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언제 우리 사회의 뇌관이 될지 모른다. 그러니 인종폭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자”고 언론을 비롯해 한국 사회가 들끓었다. 정부도 ‘여성 결혼이민자 가족 한국 사회 통합 지원정책’을 세우면서 추진 배경으로 파리와 호주에서 일어난 인종폭동을 언급했을 정도다.
물론 이주자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 문제를 방치하면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차별을 없애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시각이 자칫 이주자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으로 빗나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공대 사태를 보면서 인종차별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로 삼을망정, 행여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나 다문화 가족을 사회불안 요인 집단으로 보는 잘못을 범하지 말자. 이번 사태에서 경계할 것은 이민자 문제가 아니라 조승희가 모방한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대중문화와 왜곡된 영웅주의’일 것이다.
-이 글은 [국민일보 2007.04.20 자 지헤의 아침난에 실린 컬럼을 옮겨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