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의 인권보호에 기여할 “부부 강간죄” 인정을 환영한다.
한 국 염
2009년 1월 16일 외국인 아내를 협박하여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남편에게 부인 강간죄를 적용한 부산지법 형사합의 5부(재판장 고종수)의 선고를 환영하며 이 선고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의 인권보호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당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무시한 채 폭력의 방법으로 강간을 저지른 것이므로, 피해자와 실질적 혼인관계가 유지되고 있더라도 성폭력범죄 처벌법의 특수강간죄를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법이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런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 재판부의 판결처럼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 중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 채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남편에 의한 성폭력은 매우 다양하다. 이번의 경우처럼 남편이 무기를 휘두르거나 힘을 이용해서 폭력적으로 성관계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인 아내에게는 시도조차 못해 볼 이상한 포르노를 보고 그대로 재현해줄 것을 요구해서 성에 대한 혐오감이나 왜곡된 성의식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내들은 남편들의 무리한 성관계 요구로 질이 상했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호소하는 많은 경우는 아내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남편들의 일방적인 성관계 요구다. 결혼이주여성의 대다수는 18세에서 25살 미만의 성경험 없는 여성들이 많은데 비해 한국인 남성들은 35세 이상으로 성적으로는 비교적 왕성한 시기에 있다. 상담을 하는 여성들 중에 남편이 매일 밤 성관계를 요구하는데, 남편과의 성관계가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경우들이 있다. 처음의 경험이 고통스러워 남편의 요구에 거절하면 바로 폭력으로 이어지거나 “너 왜 결혼했냐?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절하려면 이혼하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기 때문에 한국에 머물기 위해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는데, 이 경우 남편의 성관계요구가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분히 부부강간에 해당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번 필리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성폭력을 부인 강간죄를 적용하면서 “잘못된 방법으로 아내를 강간하는 것은 상대를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충족과 의사관철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며 사람을 사물화하는 것”이며, “부부간 강간죄를 묻지 않는 것은 개인과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으며 권리의식이 보편화한 문명시대에 통용될 수 없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 재판부의 결정은 결혼이주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절실한 결정이다. 대다수의 결혼이주여성들은 통해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경비를 지불하고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한국에 이주하게 된다. 이미 중개업체에 의한 국제결혼을 하면서 남편들 중에는 제삼세계에서 온 외국부인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다는 상품적인 가치나 도구적 가치로 인식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폭력적인 성관계도 이 선상에서 이루어지며, 그 결과 결혼이주여성들이 부부의 성관계에서 인권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왜 부부강간 인정이 결혼이주여성에게 중요한가? 한국여성들의 경우 아직 한국에서 부부 강간은 허용되지 않지만 이혼사유는 되기 때문에 남편과 협의이혼을 할 수 가 있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협의이혼을 하면 한국에 체류할 수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폭력을 견딜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남편에 의한 강제 성관계가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가정폭력 등 귀책사유 범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며 그 핵심에는 부부강간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부부강간죄 인정은 남편 귀책사유의 범주를 넓혀 결혼이주여성의 기본권인 체류권을 보호하는 등 인권보호에도 큰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부부강간을 인정한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가해 남편은 필리핀 아내의 그동안의 태도를 이유로 강력히 반발한다고 한다(연합뉴스 “부인 `강간’ 유죄 선고받은 피고인 “억울하다”). 기사에 의하면 부인이 돈만 요구하고 집안일에 소홀했으며 심지어 가출까지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고, 평소에도 부부간의 의무인 성관계에 소극적이어서 홧김에 부부 싸움 후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으나 가스총 외에 흉기는 들이대지 않았다고, 억울하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부인이 했을 경우 집안일을 소홀히 하거나 가출 등의 문제는 부부 싸움 이유는 될지언정 가스총을 들여대고 강제 성관계를 갖는 것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이 판결은 십중팔구 고법으로 항소될 조짐인데, “부인 강간”을 여성폭력의 일례로 제시하고 있는 국제연합의 결정을 염두에 두고 번복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09년 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