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와 지원이 가진 함정에 대해 생각함
허오영숙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조직팀장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인권 보호’라는 말이 있다. 약자에게 더 자주 쓰이는 경향이 있는 이 말이 불편할 때가 있다.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과 보호를 하는 사람 사이에 대등하지 않은 관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권이 분명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보호하고 지원해 준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 시혜의 시각도 자연스레 등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보호받는 대상을 피해자 담론에 가두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성폭력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여성들은 잠재적, 현실적 피해자로만 드러나게 되고 마는데 그래서 패션 스타일에 관계없이 야한 옷을 입으면 안 되고, 밤 늦게 돌아다니는 것이 비난받는 보행권의 제한이 당연한 논리가 되고 만다.
이주여성과 관련해서도 이 ‘보호’는 강력하게 작동하는데, 최근에 있었던 두 가지 이주여성 관련 사건을 가지고 ‘보호’와
‘지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주여성이 그동안 주로 폭력의 피해자로 등장했다면 가해자로도 등장한 사건이 지난 1월 말에 발행하였다. 캄보디아에서 국제결혼 중개업을 통해 결혼한 ㅊ씨는 1990년 5월 생으로 2008년 4월에 결혼할 때 고작 열 여덟 살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1971년 생의 컴퓨터 수리업을 하는 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었다. 중개업을 통한 국제결혼이 어떤 모습인가를 이 부부의 신상정보가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어쨌거나 그들은 부부가 되었고, 술 좋아하는 한국인 쪽에 속하는 그녀의 남편은 자주 술을 마셨고 소위 ‘주사’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주사 중 하나는 몇 시간이나 어린 아내를 앞에 앉혀 놓고 움직이지 말고 똑바로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때로 그는 주사가 아니어도 폭력을 썼다. 비록 그 정도가 죽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횟수는 빈번했다. 이런 상황은 그녀가 임신을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이 나던 날, 여느 때 처럼 남편은 장소를 바꿔가며 술을 마셨고 그 와중에 그녀는 남편을 더러 말리기도 했고 임신했는데 앞에서 담배 핀다고 잔소리도 했다. 남편은 그런 어린 아내의 간섭에 화가 났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부터 때리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내린 뒤 남편이 술을 사러 슈퍼에 간 사이, 집에 가서 어떤 일이 생길지 두려워진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 일 없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남편을 칼로 찔렀고 병원에 후송된 남편은 며칠 뒤 사망했다. 만 18세 미성년자인 그녀는 임신 3개월의 몸으로 구속되었고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이제까지 국제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이 극단적으로 나타날 경우 주로 남편에게 여성이 맞아 죽거나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여성들의 가정폭력 사건도 폭력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났듯이 이주여성에게도 ‘(남편에게) 죽거나, (남편을) 죽이거나’로 나아가고 있음을 이 사건은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주여성 인권지원단체들이 ㅊ씨를 지원하면서 이 사건이 알려졌지만, 곧 벽에 부딪혔다. 그녀가 당한 폭력의 정도가 살인을 할 만큼 심한 것이었나 하는 점이 그 벽 중 하나였다. 그녀가 죽을 만큼 맞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 그랬다면 그녀는 죄수가 아니라 시체로 발견되었으리라) 자꾸 그녀의 피해자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주사’로 가볍게 표현되는 남편의 유형, 무형의 폭력은 그녀가 죽지 않아서, 죽을 만큼 맞지 않아서 인정되지 못할 처지에 빠졌다. 그렇게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자신이 살해한 남편이 남긴 한국 국적의 아이를 뱃속에 가진 외국인 죄수인 그녀의 남은 삶은 어떻게 될까?
다른 한편으로 한국사회의 또 다른 소수자였던 그녀 남편의 삶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약자끼리만 부딪치는 것 같은’ 스산한 풍경의 왜곡된 국제결혼 시장에서 그 역시 다른 측면의 피해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미등록 상태(정부 용어 “불법체류자”)로 김밥집에서 일하던 중국 여성 2명을 단속이라는 이름으로 잡아가면서 윗옷이 거의 벗겨져 상체가 드러나고, 수갑을 채우고, 목을 가격하는 폭력적인 장면이 우연히 기자의 동영상에 잡히면서 불거졌다. 단속반원들은 그 행태 때문에 용역깡패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그들은 법무부 출입국 관리업무를 집행중인 공무원이다. 그동안 소위 단속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가폭력에 대해 정부는 이주민들이나 이주관련 단체들이 과도하게 폭력을 강조하는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법 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법무부의 실체가 얼마나 적나라한지 구체적인 증거로 드러난 첫 사례가 이번 사건이기도 했다.
이주관련 단체들은 법무부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는 한편, 이 여성들이 수감된 (정부 용어 “보호”된) 외국인 보호소에 면회를 하여 여성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사건은 ‘폭력 단속’의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난 지라 담당자 처벌, 책임자 문책 등의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 내가 일하는 이주여성인권센터도 이주여성 사안이라 개입하게 되었고 여성들에 대한 병원 진료, 치료와 법률 지원을 준비하면서 여성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이틀 동안 여성들과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더니 출국하러 공항에 있노라고 연락이 왔다. 그러니까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이 중국 여성들에게 돈을 주고 합의한 다음, 출국시키는 방법으로 빼돌려 이 문제를 덮어버린 것이다. 그 합의금은 윗옷이 벗겨졌지만 맞지는 않은 여성에게는 450만원을, 맞기도 한 여성에게는 700만원을 줬다고 한다.
지원단체들은 법무부의 행태에도 치를 떨었지만 그동안 생판 모르는 그녀들에게 단지 그녀들의 인권을 생각해서 개입했던 이주관련 단체들에게 의논없이 돈 받고 떠나버린, 미등록 체류자 단속 과정의 인권 침해에 관해 국가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무위로 만들어 버린 그녀들에 대한 서운함도 많았다. 그러나 이주관련 단체의 관계자들 역시 ‘천만원 미만’인 그 액수가 그 여성들이 중국에 갔을 때 얼마나 큰 돈인지, 한국에 이주관련 단체들과 소송을 한다고 해도 그녀들이 그만한 돈을 만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쩌면 소송을 해도 빈손으로 강제출국 당할 수 있는 처지였음을 잘 안다.
그녀들이 미등록 상태의 신분 불안에서도 한국에 체류하고 싶었던 이유, 변변찮은 식당일이지만 하고 싶었던 이유는 돈 때문이었고 당연히 그녀들은 그것을 가장 먼저 따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위치의 차이는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한국의 지원단체와 이주민의 관계를 ‘지원하는 자와 수혜받는 자’의 관계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지원단체들이 이러한 권력관계를 인식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보호와 지원이 가진 타자화의 함정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꼭 이주민 관련 단체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에서 고민해야 할 점인데, 약자일수록 이것이 더 치명적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올 수 없는 나라이면서도 장애인 관련 건물, 예산은 어느 복지 분야보다 많은 ‘이상한’ 현실의 근저에 깔린 게 이런 거 아닐까?
* 이글은 제주여민회의 소식지 <제주여성> 2009년 봄호에 기고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