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진하게
                                                   
무엇에든 쉽게 흔들리지 않고 깨지지 않는 바위

해와 달, 별을 감싸안는 하늘을 사모하고

젖은 제 몸만 말리는 일상이 되지 않게

지친 자를 만나면 섬이 되어주고

마음의 눈은 혜안이 되고

괴로울 때라도 희망을 엿듣고

지진으로 구겨진 도시를 볼 때처럼

무섭게 가슴이 타고

언젠가 차가운 빗물이 되더라도

바위처럼 단단히 살아내려고

* 이 글은 신현림 님의 “깊고 진하게”라는 시입니다. 얼마 전 부산에서 한 베트남 여성의 남편이 갑자기 사망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이 참으로 황당하기만 한데, 보험금 때문에 시누이 가족들과 등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들어 놓은 나온 보험금 1억, 이게 문제가 된 것이지요. 이국에서 죽은 남편의 보험금 때문에 시누이가족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베트남 여성의 가슴에는 차가운 빗물이 흘러내릴 것 같습니다. 그 빗물에 무너지지 말고 바위처럼 깊고 진하게 단단히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시를 이주여성인권센터의 식구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남편 죽은 것도 막막한데, 보험금도 줄 수 없다?

-결혼이주여성의 재산권 보호 시급하다-

                                 

얼마 전 접한 한 여성의 기막힌 사연이다. 베트남 여성 A씨는 한국인 남편과 국제결혼해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결혼한지는 2년 채 안되었고 남편과의 사이에 돌이 안된 딸 아이가 하나 있다. 남편과 나이 차이는 20살 이상 나지만 남편은 A에게 잘해주었고 큰 소리 한번 치지 않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A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남편이 일하던 공장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으나 사망을 하였다. A씨의 남편은 생전에 보험을 들었는데, 남편이 죽자 이 보험금이 문제가 되었다. 보험의 수령자는 법적으로 아내임으로  당연히 아내인 베트남여성 A가 보험금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시누이가 남편이 죽기 사흘 전에  베트남 아내가 받아야 할 보험금을 갈취해 버렸다.  시누이 말로는 자기가 동생네 생활비를  댔으니 자기가 타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이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A에게 보험금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A와 함께 공장에서 일하던 직장 동료는 그건 A 남편이 10년 이상 누나에 공장에서 일한 월급으로 부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A가 남편과 살고 있던 집 보증금도 이미 가로채어간 상태다.   A가 한국인 같았으면 언감생심 문제를 삼을 생각도 못할 텐데, 외국인이고 나이가 어리다보니 그런 욕심을 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아내 A의 입장에서는 졸지에 남편을 잃어 너무 당황스럽고 앞이 캄캄하다. 남편이 없는 외국 땅에서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일도 막막한 터에 시누이식구에게 보험금까지 강탈당하고 보면 이 땅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절망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A의 경우 다행히 남편의 형이 A를 도와  시누이를 상대로 보험금 반환을 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 보험금이 A에게로 돌아갈지, 아니면 형제들간의 싸움이 될지 지켜보아야 하지만, 아무튼 A는 보험금을 돌려받으면  남편 닮은 딸을 한국에서 잘 키우고 싶다고 했다.

A씨처럼 국제결혼한 여성들이 남편의 죽음 후 보험문제나 재산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결혼한 지 5년 된 여성 M씨는 남편의 보험금 수령 후에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와서 아이들은 자기들이 키울 테니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괴롭히며 반협박으로 보험금을 가져갔다. O씨는 30세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남편과 결혼했는데 결혼 1년 만에 남편이 죽었다. 장례를 치른 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남편의 전 처 자식이 와서 보험금을 받기 위해 필요하다며 서류에 서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험금 수령인을 O에서 시집 식구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중간에서 보험금을 가로챈 전처 아들은 O씨에게 4백만 원 만을 주며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이렇게 보험금만 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권의 침해도 종종 일어난다. 중국 여성 D씨 경우는 결혼한지 3년 만에 남편이 익사사고로 죽었는데, 시집 식구들이 남편과 D씨가 살고 있던 7천 만 원짜리 전셋집의 전세금을 뺏으려고 하였다. 또 다른 베트남 여성 S씨의 경우 남편이 농협에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노후를 대비해서 보험과 증권에 투자를 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사망을 했다. 사망 후 보니 1억원 넘는 돈을 아내가 수령하게 되었다. 그러자 시어머니와 시누들은 이 여성에게 강제로 상속권과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각서에 서명토록 한 후 재산을 갈취했고, 여성에게 본국 가는 비행기표를 사주고 공항에 데려다 놓았다. 하도 서럽게 우는 외국인 여성의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한 공항 출입국관리 직원이 사연을 알고 조치를 취해 쉼터로 가게 되었다. 쉼터에서는 이 여성의 재산권을 위해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국제결혼을 한 경우에도 남편의 재산 일차 상속자는  배우자에게 있다. 따라서 외국인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아내인 이상 그 아내에게 상속권과 양육권이 있다. 그런데도 한국인 남편이 죽을 경우 시집 식구들이 중간에서 당연히 아내에게 돌아갈 재산이나 보험들을 갈취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아내가 한국어를 모르는 것을 이용해 재산이나 양육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각서에 서명을 하게 하는 경우, 또는 아내가 수령한 보험금을 위협해서 강압적으로 내놓도록 한다. 물론 소송을 해서 이를 되돌릴 수 있긴 하지만 이미 가족이 써버린 돈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낯선 땅에서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막막한데, 시집 식구로부터 재산에 대한 권리와 아이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내몰리다보면 그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처럼 한국의 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배우자의 권리를 왜 한국인 가족들은 침해하는 것일까? 아들이, 오빠가, 동생이 살아있을 경우는 그나마 가족으로 인정하던 가족들이 한국인 배우자가 죽으면 그 배우자인 이주여성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재산이 얼마라도 남겨질 경우 그 재산을 영원한 식구가 되지 않을 남, 외국인에게 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현성되는 듯하다. 문제를 삼는 가족들이 흔히 하는 말이 “우리와 같이 살 것도 아닌데, 왜 우리 oo의 돈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인 배우자가 재산 없이 사망할 경우 그의 가족이 그 외국인 여성배우자의 생활을 책임지지도 않는다. 홀로 살아가야 할 여인에 대한 측은지심도 있으련만, 돈과 피붙이라는 의식 앞에서는 맥을 못추는 것 같다. 한국인 배우자가 죽으면 그 아내는 사면초가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혼이주여성에게 있어 남편이 사망할 경우 보험금이나 재산권 강탈은 단순히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편 사망 후 가족들이 재산권을 강탈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인식개선은 물로 최소한 두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하나는 남편들의 역할이다. 자신의 사망 후 자기 가족에 의해 자칫 아내는 물론 자식까지도 버려질 수 있음을 유의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평상시에 배우자에게 자신의 재산 상태와 사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자신이 죽고 나서도 아내가 한국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재산에 대한 서류정리를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결혼이주여성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자신의 재산권을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자신이 모르는 서류에는 일체 서명을 하지 않도록 하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센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 이주여성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재산권을 보장할 획기적인 방안이 요청된다.
남편이 죽어 기막힌데, 남편이 남긴 보험급까지 빼앗기는 현실! 언제까지 결혼이주여성들이 이땅에서 이방인으로 간주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한편에서는 한국사람 만들지 못해서 애쓰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인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밀어내지 못해 애쓰고….이주여성의 가슴에 내리는 찬 빗물에 마음이 시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