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이 생각하는 인권은?
한국염
뜨거웠던 지난 여름에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열기가 우리 센터 옆에 있는 숭인2동사무소 강당에 가득했다. 바로 이주여성 인권 글쓰기 대회의 열기였다. 우리 센터가 ‘이주여성 인권 글쓰기 공모전’을 계획한 것은 인권 글쓰기를 통해서 이주여성의 삶의 자리와 마음을 읽고 그 희망을 한국사회에 전하고 싶어서였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이주여성 글쓰기 대회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인권글쓰기는 처음이다. 이주여성들의 인권은 이주여성들이 아니라 이주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로 들려졌다. 그러기에 인권이라는 말 속에서도 이주여성은 여전히 대상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주여성 스스로가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말해보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인권이라는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응모하는 이들이 적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짧은 기간 안에 54편이 응모되었다. 목포에서 부산, 대구, 청주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참여했다. 원래는 예선에서 15편을 거르려고 했지만, 좋은 글들이 많았고, 그냥 탈락시키기에는 작품들이 아까워서 행복한 고민 끝에 예선 통과 작품을 25편으로 늘렸다. 본선에서 다섯 편이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최우수 작품으로 뽑힌 한영애 씨가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디 가서 이주여성 인권에 관한 강의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영애 씨는 “내가 생각하는 이주여성의 인권‘이라는 글에서 국제결혼중개업이 내건 현수막, 결혼중개업을 통해 결혼한 남성들이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현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결혼이민자에 대한 인식개선과 인권침해를 방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 이주여성 인권 글쓰기대회의 응모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가부장주의 하에서의 상처와 사회속에서 차별받았던 삶의 현장을 고발하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차별의 종류와 차별하는 대상도 다양하다. 첫째는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별이다. 아이 낳으라고 강요하는 시어머니, “아기를 언제 만들거니”라는 말로 며느리를 아기 낳는 기계처럼 대하는 시어머니, 아들 못낳으면 너희 집에 가라는 말로 상처를 주는 시어머니, 집안의 잘못된 상황이 생기면 모두 여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한국사회의 성차별적 편견과 특히, 부부 싸움 할 때는 “돈 때문에 결혼했지?”하는 말을 해서 상처주는 남편, 그리고 자신이 돈에 팔려 온 물건 인양 취급당한 경험 등 가족내에서의 차별을 드러냈다.
또다른 차별 현장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고발하고 있다. 한국국적을 받았음에도 외국인으로 차별받는 현상,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벽,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모습,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는 이웃 할머니의 모습, 외국인이라고 무시하고 나쁜 사람 취급하는 한국인들의 모습, 중국에서 온 것이 무슨 죄나 되는 것처럼 툭하면 “중국에서 왔으니..”하고 말하는 한국인들의 언행, 외모가 달라 무시당한 경험, 피부색이 다른 자식을 갖고 있는 엄마의 걱정, 한국에 상업연수생으로 와서 월급을 제대로 못받은 일 등,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는 우대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은 차별하는 한국사회, 엄마가 외국인이라고 무시당하는 다문화가족의 자녀들의 현장 등 사회적 편견의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또 하나의 문제는 문화차이로 인한 갈등의 문제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몰라 겪었던 어려움, 음식문화와 식생활 차이로 인한 어려움 등을 소개하면서 다문화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차별의 현장을 소개하면서 이주여성들이 그리고 있는 꿈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이다. 이들은 “인권이란 모든 인류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권리이자 모든 인류가 받아야 할 권리“라고 정의하면서 이 세상에서 차별과 편견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소망한다. 한 이주여성은 인권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어떤 이는 ‘평등하게 사는 세상’, ‘자신의 권리보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로 정의했다. 한 이주여성은 중국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한국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먼저 이웃으로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 한 여성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과 산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경험을 소개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 특히 남녀-외국인-장애인의 차별이 없기를 기원하였다. 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내린 인권에 대한 정의를 특히 한국사회는 경청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차별현장을 고발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인권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내린 한편, 이주여성들은 자신들의 글에서 인권이 향상되기 위한 처방전을 제시한다. 한 여성은 이주여성의 삶을 산세베리아에 비교하면서, 꽃을 잘 관찰하고 꽃의 성질을 알고 꽃을 키우면 꽃이 잘 자라나듯이, 이주여성을 환대하는 마음을 갖고, 이주여성의 입장에서 이해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다른 여성은 폭력상황에서 남편을 죽인 캄보디아 여성 초은 씨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을 통역자로서 지켜 본 소감을 피력하면서, 폭력이 꼭 힘으로만 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무시하는 언행, 그 자체가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웃음이 났던 작품은 “엄마, 나 오씨인데 왜 다문화야?”라는 글이다. 필리핀 엄마를 둔 아동이 학교에서 “다문화가족 자녀는 남으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집에 와서 자기 엄마에게 “왜 나 오씨인데 다문화라고 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 아이의 질문이 학교의 다문화교육현장을 꼬집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국인으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아이에게 다문화가족의 자녀로 ‘구분’해내려고 하는 학교현장의 몽매함이 불러 온 웃지 못할 결과로 보여진다.
아무쪼록 이주여성들이 인권 글쓰기에서 바라는 것처럼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차별 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주여성들의 입장에서 이들을 보고, 이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벽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그 벽을 타넘는 담쟁이처럼, 좌절하지 않고 차별의 벽을 넘어 평등의 세상을 향해 가지 뻗기를 하는 , 그런 이주여성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2009년 9월 30일 숭인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