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따이한에게 H2 비자를 – 이주여성들의 제안


                                                                                                                                        허오영숙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조직팀장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부설 이주여성상담소 울타리에는 6개국 출신 이주여성 상담원 8명이 자국 출신 이주여성들을 위한 상담, 통·번역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상담원 선생님들과 매일 아침 신문 읽기를 한다. 신문기사를 통해 단어, 문장 등 한국어 공부도 하고, 이주여성 관련 시사, 상식,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다.  얼마 전에 함께 공부한 기사는 “라이따이한 ‘가족상봉’ 나선 일본인 사진가 무라야마”이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9120.html


‘라이따이한’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말하는 베트남어이다. 베트남 상담 선생님에 따르면 베트남어로 ‘라이’는 혼혈, 잡종의 의미가 있으며, ‘따이’는 외국인, ‘한’은 한국을 뜻한다고 한다.


한국사회에 ‘월남전’으로 익숙한 베트남 전쟁 당시 많은 한국 군인, 군속이 파병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군인, 군속으로 베트남에 간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과 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 아이를 두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베트남전이 끝난지 30년이 훌쩍 지나 이제 그 2세인 라이따이한들도 40세 전후의 나이가 되었다. 이 기사의 베트남 여성 ‘람’씨처럼 베트남에서 정식으로 결혼했던 한국 남성들도 있지만 동거 형태도 많았다. 또한, 대부분의 전쟁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강간의 형태도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관련기사 http://h21.hani.co.kr/section-021014000/2006/05/021014000200605030608064.html



이주여성들과 라이따이한에 대한 기사를 읽은 뒤 이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토론은 산발적이었다. 처음에 라이따이한이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찾게 되면, 한국에서 새롭게 가정을 꾸린 남성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편, 한국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된 남·북한의 가족을 찾는 것에도 역시 같은 문제가 대두되지만 남북이산가족상봉을 하는 것처럼 그것이 크게 문제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다가 베트남 상담 선생님이 베트남 전쟁 이후에 미국이 베트남전 당시의 미국 군인·군속의 2세에게 미국 비자를 내주었다는 말을 하자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미국은 미군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2세는 물론, 어머니인 베트남 여성, 그 여성의 혈연 가족에게까지 원할 경우 미국 비자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주여성들은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적어도 라이따이한에게 한국에 올 수 있는 비자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라이따이한이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찾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파병을 한 것은 한국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뭔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라이따이한들도 따지자면 한국 혈통이므로 외국 국적 동포에게 주는 국내 취업제도(H2 비자)를 확대하여 그들에게 H2비자를 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제안이 나왔다. H2 비자를 발급하는 특례고용허가제는 외국국적 동포의 국내 취업제도로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용자가 대한민국에 입국한 외국국적 동포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 즉, 중국 또는 구소련의 동포 등에 대해 최장 5년간 자유로운 출입국과 취업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방문취업(H-2) 복수사증(M)을 발급한다. 방문취업(H-2) 비자를 소지한 동포는 친척방문, 관광, 상업적 용무 등은 물론 특정 절차를 거친 후, 허용된 업종(서비스업ㆍ제조업ㆍ농축산업ㆍ어업ㆍ건설업)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http://eps.hrdkorea.or.kr/h2/intro.do?method=view&view_id=intro_01


이주여성들의 제안이 매우 현실적이고 타당한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전에 대한 평가와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베트남 사회에서 ‘적국 군인’의 아이로 태어난 라이따이한들이 성장하면서 받았을 고통을 한국사회가 돌아봐야 함은 분명하다. 그것이 구체적인 형태로 한국 정부의 H2 비자 발급이라면 기존 제도를 이용하면서도, 라이따이한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남성과의 국제결혼 상대국 2위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베트남 이주여성들에게 낯뜨겁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라이따이한을 모른체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