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자의 인권과 영주권 전치주의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우선한 영주권전치주의여야 한다.-


                                     한국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영주권전치주의 

법무부에서 영주권전치주의를 도입할 계획이다. 영주권전치주의란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에게 먼저 영주권을 부여한 다음 후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외국인으로 한국에 입국하면 입국 목적에 따라 체류를 할 수 있는 비자를 부여받는데, 영주비자(F-5)란 한국에 영구체류가 보장되고 취업활동에 제한이 없다. 영주권을 갖고 있으면 출국기간 1년 미만은 재입국 허가 의무가 면제되거나 일반 외국인과 달리 함부로 강제퇴거사유를 적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공적 권한으로는 영주권을 갖고 3년 이상 한국에 체류하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권도 행사할 수 있다. 단 피선거권이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는 참여할 수 없다.

이런 영주자격은 재외공관에서 입국사증의 형태로 부여받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국내 체류 중에 자격을 인정받아 부여받을 수 있다. 국내 영주자격취득의 경우 일반 외국인은 국내 거주기간 5년 이상이면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이민자들의 경우는 일반 외국인 경우와 달리 2년 동안 거주 비자(F-2)로 입국하여 2년 동안 한국가족과 동거 후에 영주권이나 국적취득을 신청할 수 있다. 2010년 12월 현재 약 45,473명이 영주자격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국민배우자가 12,692명, 국적취득 요건을 갖춘 자가 19,309명, 화교가 11,560명, 재외동포가 187명, 5년 이상 거주자가 1,623명, 고액투자와 첨단분야과학자, 특별공로자, 특별분야에 능력이 있는 자 등 소위 ‘우수인재’ 로 영주권을 취득한 자가 1,725명이다(법무부 통계자료).


영주권전치주의 도입의 배경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영주권전치주의를 취하려고 하는 것은 현행 영주제도가 국적에 비해 신청요건이 비슷하거나 더 엄격해서 굳이 영주자격을 신청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영주제도를 보다 현실성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현행 국적제도가 “준비가 부족한 국민을 양산하고 있고, 그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고, 장기 체류방편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영주자격과 국적제도를 연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주자격과 국적제도 연동을 하는 영주권전치주의의 핵심 배경에는 결혼이민자 즉 국민배우자 자격으로 이주한 이들의 국적취득을 영주자격으로 한 번 더 거르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국민배우자로 입국하는 여성들에게 1년 또는 2년 체류 후 영주권을 주고 그후 2년에서 3년 후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단계를 거치겠다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이다(법무부 국적․ 영주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워크숍 자료).


영주권전치주의의 가능성

영주권전치주의는 안전한 생존권확보를 위해서 귀화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를 할 수 있다. 법무부가 이중국적제도를 도입하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이 모국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한국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중국적제도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중국적제도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의 이주여성들은 이중국적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영주권 제도는 해마다 체류연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이주여성들에게 귀화를 하지 않고도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하고 취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됨과 동시에 살면서 한국에 귀화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 후 결정할 수 있어서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영주권전치주의의 전제

문제는 영주권전치주의를 도입할 때 하나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이나 시댁 가족의 신원보증 없이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체류제도는 국민배우자의 체류신청자격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의존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인 배우자와 외국인배우자 사이에 권력구조 불평등성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서  외국인배우자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영주권전치주의를 도입하면서 신원보증인을 남편과 그 가족으로 제한한다면, 이를 빌미로 결혼이주여성을 통제하는 도구가 되거나 착취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도 체류연장 할 때 남편들의 신원보증이 전제가 되기 때문에 연장 기한이 되면 결혼이주여성에게 체류연장을 해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국민배우자들이 있는 현실에서 남편의 신원보증 없이도 결혼이주여성들이 자력으로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부인의 체류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 신원보증을 기피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되었는데도 귀화가 되면 외국인 배우자가 도망을 갈까봐 신원보증을 기피하는 이들도 있다.


혼인의 진정성을 볼모로 잡는 체류정책의 문제

국적취득이나 체류권, 영주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들이 있다. 이들은 국제결혼가정 부부 동거기간이 5년 미만의 비중이 72.7%라는 비율을 들어(작년에는 80%였다) 결혼이주여성의 혼인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2008년 통계에서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경험이 47.3%라는 점, 또 결혼으로 입국해서 소위 ‘불법체류’로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결혼이민자들의 수가 7.8%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미루어 이혼율의 증가나 동거기간을 갖고 혼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07년 4월 15일자 대법원 등기호적국의 “국제혼인 현황” 발표에 의하면 국제결혼부부의 이혼율이 높은 것은 “결혼방식이 신랑이 모든 비용을 대고 한국보다 어려운 나라에서 신부를 데리고 오는 방식의 결혼과 문화적 갈등,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부재”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대법원의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혼인의 진정성을 담보삼아 결혼이주자의 체류자격에 족쇄를 가하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것이다.  

인권친화적 영주권전치주의가 되기 위한 전제들

결혼이주여성에게 인권친화적 영주권전치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현행처럼 한국인 배우자 혹은 한국가족에 제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을 취할 경우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외국인배우자에 대한 외국인 등록증 취득에 협조하지 않거나 영주권 취득을 위한 신원보증을 거부하는 한국인 배우자를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해서 결혼이주자 스스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결혼이주자가 한국사회에 정착해서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을 경우 결혼이주자 스스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 한다(예를 들어 결혼이주자의 재직증명서등)

셋째, 가정폭력 등 이주여성 본인의 귀책사유 없이 혼인이 해체된 경우 공인된 단체가 신원보증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영주권전치주의는 잘만 하면 결혼이주자에게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단순히 결혼이주자의 국적취득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된다면 반인권적인 제도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필히 이주여성의 인권을 고려한 제도도입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