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의 선거 출마, 대만의 사례에서 든 생각


                                                                                                                                           허오영숙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조직팀장


나는 지난 8월 19일-21일 아시아의 결혼이주 관련 국제 워크숍에 참여차 대만의 타이베이를 방문하였다. 이 워크숍이 끝나고 대만 NGO가 주최한 오픈 포럼에 참석하였다. 이 포럼은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를 주제로 대만, 홍콩, 한국의 사례 발표가 주요내용이었고, 나는 한국 사례 발표자로 초대를 받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오픈 포럼의 각 국가별 발표 내용이나 토론이 아니었다. 포럼을 시작하기 전에 이 포럼을 주관한 TIFA(Taiwan International Family Association 대만국제가족협회)에서 준비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대만으로 결혼이주한 여성의 직접 선거 참가기’가 주제인 다큐멘터리였다. 이 다큐는 한글 자막이나 영문 자막이 없이 중국어로만 되어 있어서 통역의 해설(?)를 들으며 겨우 이해하였다. 그러니 나의 이해가 틀릴 수도 있음을 미리 고백하면서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도네시아 출신 주인공 이주여성은 18년 전에 대만 남부의 농촌 남성과 결혼하여 대만으로 왔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시골 풍경은 한국의 농촌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마을에서 온갖 궂은일과 봉사활동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았다. 그녀는 마을의 독거노인에게 식사를 제공하거나 말벗이 되어 주었고, 동네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치 한국 시골의 부녀회장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통역자의 말에 따르면 영화속에서 인터뷰하는 그녀의 대만어 수준은 남부에서 사용하는 대만어를 역시 남부 출신인 통역자 자신보다 더 잘한다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한다. (대만은 남부에서는 대만어를, 타이베이가 위치한 북부에서는 중국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마을에 대표를 뽑는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마을 대표라고 하지만 한국에서의 ‘마을 리장 선거’ 수준보다는 규모가 큰 것 같았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마을일을 열심히 해 왔고, 마을 대표가 되어 더 열심히 마을을 위해 일하고자 하였다.


그녀가 출마를 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하자 평소에 그녀를 인정하던 지역사회의 모습은 돌변하였다. 그녀의 보살핌을 받았던 독거노인 할아버지는 인터뷰에서 ‘그녀가 마을 대표가 되면 다른 마을로 이사가겠다’고 말한다. 다른 마을 사람은 ‘그녀를 이주여성이라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 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반대하고, 또 다른 주민은 ‘이주자가 어떻게 대만 사람을 통치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제까지 그 마을 대표 선거는 300표 정도가 당선권이었고 투표율도 낮았다고 한다. 그런데 투표 결과 그녀는 240표 정도를 얻었고, 상대방 후보는 500표 정도를 얻었다. 당연히 그녀는 낙선했다. 이주자인 그녀가 혹시 마을 대표가 될까봐 대만 선주민들이 결집하여 투표율이 올라갔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 다큐를 보는 동안 다양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봉사하는 결혼이주여성일 때는 지역사회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리에서 ‘공적’으로 봉사하고자 했을 때 그녀는 철저하게 거부당했다. 그녀가 18년 동안 일군 대만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생활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소에 ‘대만 사람과 다름없다’고 했던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대만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주자 출신이 직접 선거에 도전해 본 적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이 직접 선거에 출마한다면 이 다큐의 모습과 과연 다를까? 미국에서 고위직의 공직에 진출한 한국계 출신의 소식이 자랑스럽게 뉴스를 장식하는 한국사회에서 이주자의 정치 참여에 대한 역지사지를 보여줄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주자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디까지이며, 이주자들에게 어느 만큼의 시간과 자세를 요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