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혼인취소판결의 부당성
한국염
지난 몇 개월동안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지원하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성폭력피해 이주여성에 내린 혼인취소판결’을 취소하라는 운동이다. 1심판결의 결과를 듣고 우리는 이의 부당함을 알리며 17개 단체와 함께 전국에서 2500명의 서명을 모아 진정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이 너무 안타까워 직접 탄원서를 일일이 옮겨 적어 서명지를 우편으로 보내주신 분도 있었다.
이 재판 사건의 발단은 베트남 출신 며느리에게 한 시아버지의 성폭력사건에서 발단이 되었다. 베트남 여성 H씨는 2012년 4월 22세의 나이에 중개업체를 통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서 3개월 후인 2012년 7월에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리고 불과 6개월만인 2013년 1월 시아버지(후에 남편의 계부로 밝혀짐)에게 강간을 당했다. 시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지 H씨는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경찰에서 H씨를 쉼터로 안내하여 쉼터에 입소하게 되었다. 가해자인 시아버지는 강간죄로 7년 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이고, 이로서 그의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문제는 H씨의 고통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아버지에 의한 성폭력 자체도 H씨에게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그가 당한 성폭력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야기하는 형벌이 되고 말았다. 시아버지의 강간으로 인하여 결혼생활이 종료된 것으로 모자라서 남편이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 2014년 6월 24일, 전주지방법원은 남편 김모(1975년생)씨가 베트남 여성 A(1990년생)씨를 상대로 제기한 혼인무효 소송에 대하여 혼인취소와 함께 남편에 대한 위자료 800만원 지급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의 핵심적인 취지는 베트남 여성 H씨가 남편과 결혼하기 전 베트남에서 있었던 출산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씨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놀러갔다가 납치되어 3일동안 감금을 당한 채 성폭력을 당했고, 어린 나이에 원치 않던 출산을 한 경험이 있다. H씨를 납치한 마을은 여성을 보쌈해 강제결혼을 하는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고, H씨는 이 말도 안되는 가부장적인 제도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렇게 남치당한 집에서 계속 폭력과 학대를 당해 H씨는 도망쳐 나왔다. 이후 H씨를 납치했던 남성은 그녀에게 결혼을 요구했지만 H씨도, H씨의 집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남성이 집으로 찾아와서 지속적으로 괴롭혔기 때문에 그녀는 집에서도 살 수 없어서 혼자 집을 떠나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러다 22살에 중개업의 알선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H씨는 자신이 출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베트남측 통역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게 남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H씨의 말에 통역인은 “괜찮다”고 했다. 재판과정에서 그 통역인이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H씨는 효인취소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비교가 안되겠지만 중개업체가 속인 것은 H씨의 경우만이 아니다. 남편이 지적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H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중개업에 의한 국제결혼이 일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에 속성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중요한 정보들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점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혼인취소와 위자료 8백만 원 지급‘ 판결을 내린 전주지법 1심판결에 대해 몇가지 원초적인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이 판결은 형식적인 법 논리에 치중하여 아동성폭력피해 여성의 인권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모든 아동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의 정신에는 필요할 경우 본인이 당한 아동성폭력피해사실을 숨길 권리도 포함된다. 이동성폭력피해로 임신하고 출산한 것을 성인이 되어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를 삼는 것은 아동권리보호에 역행하는 것이다. 혼전 임신사실을 숨겼다는 자구적 법 논리에 의한 판결의 결과 H씨는 시아버지에 의한 성폭력피해자에서 이제 거짓으로 혼인을 한, 나쁜 사람, 벌을 받아야 할 가해자로서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중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다.
현행 한국의 혼인무효 판결 사례는 배우자가 혼전 임신사실을 숨겼을 경우 혼인무효판결판례가 있다. 그러나 그 임신이 성폭력피해로 인한 결과인 경우에 대해서는 사례가 없다. 이번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이 판결이 성폭력, 특히 아동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첫 판결로서 중요한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혼전 임신사실을 숨겼다는 것에 책임을 묻는 가사소송과 형사사건인 성폭력피해를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것이 법리만을 적용해 이주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인권적으로 용납하기가 어렵다.
둘째 혼인 취소 판결은 H씨가 시아버지에게 당한 친족 성폭력을 무위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혼인이 성립한 적이 없으니 비록 계부일지라고 친족에 의한 성폭력이 성립될 수 없게 된다. 시아버지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H씨 부부는 잘 살았다고 한다. 시아버지의 성폭력으로 가정이 깨어지게 되었는데, 이제는 본말이 전도되어 H씨가 과거를 숨겼다는 이유로 혼인무효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H씨는 시아버지에 의한 친족성폭력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체류할 수 없게 되었다.
셋째로 H씨가 겪어야 할 트라우마에 대해 한국사회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H씨는 아동성폭력과 그로 인한 임․ 출산이라는 멍에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한국에 와서 불행한 과거를 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여성에게, 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여 결혼관계가 끝장나 버린 여성에게, 13세 때의 납치와 성폭력 그로 인한 출산경험을 따져 물으며 베트남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과연 “여성에 대한 폭력철폐”에 근거하는 법정신인가 묻고 싶다.
지금 아동성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H씨는 시아버지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이중의 고통으로 치유되었던 상처가 재발하여 다시 치유를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시아버지의 성폭력 사건과 남편의 혼인무효 소송 후 H씨는 이혼청구와 위자료청구 소송과 더불어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였다. 비록 계부라고는 하나 시아버지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입장에서 남편과 혼인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혼을, 또한 조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서 시아버지의 H씨에 대한 추행과 폭행을 막을 수도 있었는데 지켜주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위자료 청구를 한 것이다. 혼인이 무효되면 H씨의 소송은 원인무효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엎고 아동성폭력피해자로서, 친족에 의한 성폭력피해자로서의 H씨의 고통을 헤아려 혼인무효가 아니라 이혼판결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쉼터에서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한 베트남 여성에게 기쁜 소식이 들리기를 희망하며. 2014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