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든가 죽이든가 해야만 알려지는가’

 

[최민희 기자]

기사입력(2009-03-06 20:16)

 

가정폭력 피해 캄보디아 결혼이주여성 구명을 위한 대책위관계자와 필리핀, 캄보디아, 대만 등 이주여성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대형 현수막에 남기고 있다.

“수많은 이주여성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몽둥이로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라고, 팔 다리가 부러져야만 내가 폭력을 당했다고 믿어주겠냐고 말입니다.”

만17세의 나이로 지난해 4월 한국으로 시집 온 캄보디아 여성 A씨. 그녀는 남편(38)에게 칼로 상해를 입혀 사망케한 죄로 대구 교도소에 현재 수감된 상태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한YWCA, 여성의전화 등 ‘가정폭력 피해 캄보디아 이주여성 구명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 충정로 기장 선교교육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가정폭력의 연속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며 A씨의 구명운동을 벌여나가고 있음을 밝혔다.

대책위는 ‘이제 겨우 18살인 미성년자로서 민감한 임신 3개월중에 있었고 언어로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뱃속의 아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극심한 폭력의 공포 앞에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칼을 들었을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지난 1월 30일 밤, 남편의 친구집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택시안에서 남편은 A씨가 운다는 이유로 머리를 때렸다. 이를 저지하는 A씨에게 욕을 하며 얼굴과 머리를 마구 때렸고 집에 도착해 남편이 술을 사러간 사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으나 남편은 고자질했다는 이유로 또 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폭력에 겁에 질린 A씨는 더 이상 때리지말라는 의미로 부엌으로 가서 칼을 꺼내들었고 더욱 화가 나서 다가오는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게 되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2월 4일 끝내 남편은 사망했다.

몸으로 증명해야만 인정되는 가정폭력

권미주 한국이주여성센터 상담팀장은 “이 사건은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면서 “가정폭력이란 비단 물리적 폭력 뿐이 아닌 언어적, 정서적 모욕과 학대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2005년 보건복지부 통계조사와 2007년 여성가족부 통계조사 등에 따르면 보통 20% 내외의 여성들이 물리적 폭력을 경험한 바 있다. 권미주 팀장은 “성적학대, 경제적 방임, 유기 등 모든 종류의 폭력을 범주에 넣는다면 그 수치는 2-3배이상 달한다”며 “국제결혼 여성 두명 중 한 명은 어떤 형태로든 남편으로부터 폭력적 경험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가정 폭력은 맞아 죽든가, 죽이든가하는 피해가 발생한 이후라야 문제가 드러나고 가부장적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는 폭력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당신이 피해자인 것을 몸으로 증명해 보이십시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정폭력에 대해 피해자임을 몸으로 증명해보이면 미흡하나마 법률적 지원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지원체계도 없는 현실이어서 A씨 또한 술에 취해 사는 20살 연상의 남편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림당한 점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경찰에서 1차조사시 A씨의 말을 통역해 준 사람은 캄보디아말을 조금 할 줄 아는 베트남 여성이었고, 통역하는 여성이 심리적 압력을 주어 자신에게 불리하게 초기진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을 피의자로 조사하면서 공적기관에서 공식적 통역관도 없이 진술을 받게 한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국제결혼에 대한 우리사회의 근본적 문제도 지적했다. 이들은 ‘상업화된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 동남아시아권의 여성들에 대해 우리사회의 가부장성을 채워줄 수 있는 순종적 여성들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개인의 결혼을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듯 획일적으로 양산해내는 기형적 형태를 띠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미주 팀장은 “우리사회가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아주 관대한 것처럼 여러정책과 공익광고를 펼치고 있지만 결국 누군가의 아내, 엄마라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여성의 존재가치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캄보디아 여성과 같은 사건은 우리나라의 곪아있는 부분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주여성센터 한국염 대표는 “한국사회에서는 가정폭력의 범주를 너무 협소하게 보고 있다”며 “이 사건은 한국 여성의 가정폭력문제에 플러스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주여성들의 언어소통 부재 등 여러 특수성을 고려해서 다뤄야 하는 전형적 가정폭력문제”라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지난 2007년 남편(47)으로부터 맞아 갈비뼈 18개나 부러진채 사망한 베트남여성 후안마이씨(19)의 사건 항소심 판결문을 인용하며 가해자이지만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A씨에 대한 구명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