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쉼터에 필리핀 여성이(P) 있다. 입소한지 몇 개월 되었다.
나이도 어리다. 우리 나이로 겨우 22세.
작년에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한국에 들어온지 이틀만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한국말도 하나도 모르고 남편 얼굴이나 시어머니 얼굴이 채 눈에 익기도 전에 당한 사고였다.
P는 자기가 어디에 가는지도 모르고 남편 장례식장에 갔었고 자신에게 그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누구도 없이
남편의 장례식을 치루었다. 한국에 도착한지 이틀만에..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P는 어쨌든 시어머니와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이 시어머니가 P를 곱게 보지 않았다.
남편의 사망과 관련하여 모든 보험금을 P가 받는 것을 포기한다는 서류에 거의 강제로 사인을 하게 했고
집에 있는 이 어린 친구를 잘 돌보아 주지 않았다.
잘 돌보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먹을 것, 입을 것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고 거의 눈물로 날을 보내고 있는 P에게 늘 차가운 시선과 뜻을 알 수 없는 한국말을 내뱉으며 힘들게 하였다.
이렇게는 더 이상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 P는 집을 나와 어떻게 어떻게 도움을 구해 우리 쉼터에 입소하여 지내고 있다.
보험금과 관련하여 법률적인 소송을 진행중이지만 승소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남편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체류가 가능하나 일단 1년짜리 체류 비자를 만든 지금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정부가 P에게 체류를 허가할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돌아가는 게 맞지 않냐고..뭐하러 굳이 한국에 있으려 하냐고..
일면 맞는 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P는 오늘도 울면서 나와 상담을 하며 말했다.
“Every time I pray. God help me and give me power not to give up.
I hope that I can take care of my young brother and sister. “
필리핀에는 어린 동생들이 있고 자신이 그들을 돌보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학교 조차 다닐 수 없다고..
한국에 결혼으로 왔을때에는 남편과 열심히 잘 살려고 했고 가족들도 돌보고 싶었다고..
남편이 죽은 건 단순히 사고였지 내 책임은 아니라고..
매 순간 눈물이 나고 고향에서 모든 가족이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던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 불안한 나의 미래를 이겨내고 있는데, 나도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지만 내게는 내가 돌봐야 할 가족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쉼터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고향에 계신 친정어머니의 수술비를 보내드리고, 전화통화를 할때면 어머니는 딸이 걱정되어 울고, 딸은 어머니가 걱정되어 운다고 한다.
결혼을 하러 왔지 가족들을 돌보러 한국에 왔냐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결혼을 선택한 이유에는 이것도 포함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많은 이주여성들의 현실이다. 남편과 잘 살고 한국에 잘 적응하면 가족들도 돕고 모든게 좋아지리라는 꿈이 있었는데..이제 그녀는 결혼한지 단 이틀만에 사별한 여성이 되어 고향에 가지도 한국에 있지도 못하는 세상 사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오직 나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치떨리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남겨졌었다.
물론 이후에 쉼터에서의 생활과 법률적 지원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긴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불안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렇게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 매순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며 버티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나도 널 위해 기도해주겠다라고 말하고 상담을 마무리하는 내가 오늘은 참 초라하게 느껴진다.